[사설] 눈높이는 높은데, 계단은 오르기 싫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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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흥미로운 장면을 마주한다.

영어로 기본적인 업무 소통도 원활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글로벌 환경을 원하고,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신입인데 핵심 포지션이나 중간관리자급 역할을 기대한다.

전공 학위를 취득한 것만으로 관리직이나 전문직의 역량까지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은 규모가 아쉽고, 대기업은 진입하기 어렵다. 지역도 좋아야 하고, 연봉과 복지도 좋아야 하며, 성장 가능성과 워라밸까지 모두 갖춰야 한다.

 

선택 기준만 들어 보면 이미 여러 회사에서 모셔 가는 인재 같다. 연봉, 지역, 복지와 회사 규모는 꼼꼼하게 따지지만, 정작 회사가 자신을 채용해야 할 이유를 물으면 대답이 흐려진다.

물론 좋은 조건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더 나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고, 원하는 직무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눈높이가 아니라 그 눈높이를 뒷받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채용은 희망 사항을 접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환의 과정이다.

지원자는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기업은 그 조건에 상응하는 역량과 가능성을 요구한다. 회사 역시 지원자의 실력과 경험, 의사소통 능력과 기여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런데 일부 구직자는 회사의 연봉과 복지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역량은 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한다. 회사의 단점에는 엄격하지만 자신의 단점에는 한없이 따뜻하다.

물론 신입에게 완성된 실력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준비해 온 지원자를 두고 굳이 가능성만 주장하는 사람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회사는 교육기관이 아니고, 채용담당자는 지원자의 숨겨진 천재성을 발굴하는 오디션 심사위원도 아니다.

그런데 준비는 신입 수준이고 기대하는 역할은 중간관리자급이다. 영어 실력은 부족하지만 영어 사용 환경은 포기할 수 없고, 보여 줄 실무 성과는 아직 없지만 회사의 조건은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목표는 글로벌 핵심 인재인데, 그 목표를 증명할 자료는 아직 작성 중인 셈이다.

 

지원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여러 회사를 비교하고 선택하는 단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채용담당자는 아직 그 지원자를 검토 대상에 올릴 이유부터 찾고 있다.

본인은 어느 회사가 자신에게 더 좋은지를 고민하지만, 회사는 왜 수많은 지원자 중 이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이 미묘한 온도 차이가 취업 결과를 결정한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직무의 이름과 조건을 더욱 세밀하게 가리는 경우가 있다. 아직 개발자로 증명된 적은 없지만 개발직이 아니면 안 되고, 영어 면접을 통과할 실력은 부족하지만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회사여야 한다.

관리해 본 조직이나 성과는 없지만 실무자급 직무는 성에 차지 않고, 경력은 없지만 회사는 경력직에게 제공할 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본인은 회사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선택받을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데 선택 기준만 지나치게 많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현실과의 거리일 수 있다.

초보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초보다. 문제는 초보의 실력을 가지고 숙련자의 역할과 대우부터 요구하는 데 있다.

실력은 신입인데 기대 조건은 경력직이고, 준비는 내일부터 시작할 예정인데 보상은 오늘부터 받고 싶다면 취업이 어려운 이유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특히 초보자에게 첫 직장은 완성된 보상을 받는 자리라기 보다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하는 자리일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회사만 찾다 보면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부터 줄어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비교적 정확하게 안다.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지금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어디까지인지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반대로 준비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직무의 이름과 조건에 집착하고,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회사나 시장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쉽다. 연봉과 복지, 규모와 근무지를 검색하면 된다. 반면 자신의 수준을 평가하는 일은 불편하다. 부족한 영어, 없는 경험, 초보 수준의 실무 능력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역량을 높이는 대신 지원할 회사의 조건만 계속 높인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맞는 회사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회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맞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일 수도 있다.

 

영어가 부족하면 공부하고, 경험이 부족하면 작은 프로젝트라도 시작해야 한다. 원하는 직무의 문턱이 높다면 관련 업무부터 맡아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면 된다. 중간관리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실무자로서 성과를 내고, 좋은 조건을 원한다면 그 조건을 지급할 만한 사람이라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르는 과정은 건너뛰면서 높은 층에 도착하지 못한 현실만 불평할 수는 없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버튼만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취업에서 가장 무서운 부족함은 낮은 영어 점수나 짧은 경력이 아니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면 쌓으면 되고, 경험이 없으면 작은 기회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으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좋은 조건을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회사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회사가 지금의 나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는 지원자의 높은 안목에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다. 회사가 비용을 지불하는 대상은 증명된 역량과 기여 가능성이다.

 

높은 목표는 사람을 성장 시키지만, 근거 없는 눈높이는 사람을 제자리에 머물게 한다. 이 질문에 선명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눈높이는 허세가 아니라 목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