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녀의 성장을 대신 막는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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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전화해 “우리 아이가 왜 혼났느냐”, “우리 아이만 손해 본 것 아니냐”며 교사의 교육활동에 일일이 개입하는 부모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그런데 이런 과잉 개입은 자녀가 학교를 졸업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어도 부모가 계속 앞에 나선다.

군부대에 전화해 “우리 아들이 무엇을 먹는지 알아야 하니 식단표를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회사에 전화해 “우리 애가 요즘 힘들어한다”며 업무와 처우를 따진다.

취업 상담이 예정돼 있는데도 당사자는 자고 있고, 부모가 대신 전화를 받으며 태연하게 말한다.

“우리 애는 피곤해서 자거든요. 제가 대신 상담 받으면 안 될까요?” 이쯤 되면 자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부모의 보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자녀가 자신이 먹을 밥, 자신이 지원할 회사, 자신이 맡은 업무에 관한 문제조차 직접 묻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군대에서도 엄마, 취업할 때도 엄마, 회사에서도 엄마가 등장한다면 그 사람은 언제 자신의 인생에 직접 등장할 것인가.

 

부모의 마음은 대부분 걱정에서 출발한다.

자녀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힘든 일을 겪을까 봐 대신 전화하고 대신 항의한다. 하지만 불편함과 실패를 모두 제거해 주는 것은 보호가 아니다. 자녀가 스스로 말하고 판단하고 책임질 기회를 빼앗는 일이다.

부모가 학교에 전화하면 교사가 해결하고, 군부대에 전화하면 간부가 설명하고, 회사에 전화하면 인사 담당자가 수습해야 한다.

한 성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조직이 그 부모까지 상대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부모를 거쳐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자녀에게 잘못된 학습을 심어 준다는 점이다.

불편한 일이 생겨도 직접 설명할 필요가 없고, 부당하다고 느껴도 사실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없으며, 문제가 커지면 부모가 대신 나서 준다는 믿음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문제 해결 능력도, 의사소통 능력도, 책임감도 자라기 어렵다.

 

직장은 자녀를 양육하는 기관이 아니다. 상사는 담임교사가 아니고 인사담당자는 학부모 민원 창구가 아니다.

성인 직원에게 문제가 있다면 본인이 상황을 정리하고, 필요한 절차를 확인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부모가 회사에 전화하는 순간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가 독립적인 사회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회사에 확인시켜 주게 된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지원할 회사조차 부모가 알아보고, 상담도 부모가 대신 받고,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까지 누군가 떠먹여 줘야 한다면 취업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업무 지시를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엄마가 대신 전화할 수는 없다.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모가 팀장에게 항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모든 문제에 대신 등판할 것이 아니라, 자녀가 직접 나서도록 해야 한다.

늦잠을 자서 취업 상담을 놓쳤다면 본인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아 기회를 잃었다면 그 불편한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부모가 매번 뒤처리를 해 주면 자녀는 당장의 손해는 피할 수 있지만 평생 필요한 자립 능력을 얻지 못한다.

 

“우리 애는 자거든요”라는 말은 귀엽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성인이 자신의 상담 시간에 자고 있고 부모가 대신 전화를 받는다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취업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부모가 놓아주지 않으면 자녀도 혼자 서는 법을 배우기 어렵다. 학교 민원실에서 시작된 부모의 대리 개입이 군부대와 취업 상담실을 지나 회사까지 따라가서는 안 된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다면 부모도 보호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 애”라고 감싸고 대신 말해 줄 것인가.

사회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그 부모가 아니라 이미 성인이 된 당사자다. 자녀의 앞길을 열어 주고 싶다면 계속 앞장설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비켜서야 한다.